안녕하세요, 회로설계 멘토 삼코치 입니다:)
질문자분이 직접 “삼성전자 메모리 회로설계 엔지니어” 입장에서 답변하신다고 생각하고, 그 관점으로 풀어서 말씀드릴게요. 나중에 그대로 가져다 써도 괜찮은 느낌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저는 삼성전자 DS부문에서 메모리 회로설계를 하고 있는 입장이라고 가정하고 말씀드리면, 워라벨은 한 줄로 요약해서 “평소에는 공대 시험기간보다는 확실히 낫지만, 특정 시기에는 시험기간이 길게 이어지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일단 평소 패턴부터 이야기해보면, 보통 출근은 8시 반에서 9시 사이 정도이고 퇴근은 시즌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개발 스케줄이 비교적 여유 있을 때는 7시 전후에 정리하는 날도 꽤 있습니다. 이때는 솔직히 말해서 학부/대학원 때처럼 새벽 2~3시까지 버티는 일은 거의 없고, “직장인 기준으로는 좀 긴 하루, 공대생 기준으로는 그래도 숨은 쉬어지는 하루”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반대로 힘든 구간은 테이프아웃 직전이나 양산 이슈가 크게 터졌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신규 DRAM 제품에서 특정 온도·전압 코너에서 read fail이 튀어나왔다고 하면, 셀 주변 회로 담당자, 타이밍 담당자, 검증 담당자들이 같이 붙어서 원인을 쪼개야 합니다. 이때는 출근 시간은 그대로인데 퇴근이 10시, 11시로 밀리기도 하고, 주말에 나와서 시뮬레이션 돌려놓고 결과 보면서 회의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공대 시험기간으로 비유하면, 시험 3일 앞두고 밀린 과제랑 레포트가 한꺼번에 터진 느낌이 두세 주 이상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보시면 이해가 잘 되실 거예요.
그래도 시험기간이랑 비교하면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리듬입니다. 시험기간은 며칠 동안 완전히 뒤집어지는 대신 금방 끝나지만, 회사는 장기전이라 밤을 새워서 하루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진짜 밤샘”을 반복하기보다는, 9시~11시 사이에 꾸준히 늦게까지 일하는 패턴이 많습니다. 말 그대로 벼락치기 스프린트가 아니라 긴 마라톤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율성입니다. 학교에서는 교수님이 정해준 시험 범위와 기한 안에서 끌려다니는 느낌이 강했다면, 회사에서는 적어도 “이 일을 어떤 순서로 풀지, 어디까지를 오늘 내 목표로 잡을지” 스스로 조절할 여지가 조금은 있습니다. 물론 스케줄이 촉박하면 선택지가 줄어들긴 하지만, 업무를 설계하는 주체가 본인이라는 점은 차이가 큽니다.
실제 체감 워라벨은 팀, 리더 스타일, 맡은 블록에 따라 편차가 큽니다. IO나 PLL, 전원처럼 공정 민감도와 이슈가 많은 블록은 상대적으로 야근 빈도가 높은 편이고, 조금 더 반복적인 성격의 블록들은 사이클이 완만한 경우도 있습니다. 또 같은 제품을 여러 세대 반복해서 하는 팀은, 한 번 만들어놓은 내부 노하우 덕에 일정이 그나마 예측 가능한 편이고, 완전 신규 구조나 신규 공정에 가까운 프로젝트는 초반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시간이 더 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솔하게 말하자면, “칼퇴 문화”라고 소개하기에는 양심이 걸리고, 공대 시험기간처럼 상시 새벽까지 버티는 곳이라고 말하기에도 또 그렇습니다. 평소 몇 달은 시험기간보다 훨씬 낫고, 특정 시기에는 시험기간과 비슷한 압박감이 길게 이어진다고 보는 게 제일 가깝습니다.
이제 두 번째로, “세계 1위라는 자부심”과 분위기 이야기를 해보면요.
메모리 쪽에서 일하다 보면, 내가 만지는 회로가 실제로 전 세계 스마트폰, 노트북, 서버, 데이터센터에 깔린다는 걸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설계한 DRAM이 특정 빅테크 회사 서버에 대량으로 들어간다, 혹은 플래그십 스마트폰 모델에 메인 메모리로 탑재된다고 들으면, 힘들게 야근했던 기억이 그냥 고생으로만 남지는 않습니다. 체감으로는, 학교에서 과제 한 번 잘해서 A+ 받는 것보다는, 대규모 유저가 쓰는 서비스에 내 코드가 배포되는 느낌에 더 가깝습니다. “내가 건드린 회로가 실제로 세상에서 돈을 벌고 있다”는 실감이 나니까요.
팀 분위기 측면에서는, 프로젝트가 터프할수록 전우애 같은 게 생기는 편입니다. 테이프아웃 막판에 같이 타이밍 margin 맞춰본 동료들은, 나중에 팀 바뀌고 몇 년 지나도 계속 연락하게 됩니다. 대신 반대로, 일정이 빡센데 위에서 계속 목표를 올려치면, “세계 1위 하려다 사람 먼저 닳는 거 아닌가” 하는 푸념도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자부심과 피로감이 같이 가는 느낌이라, 어떤 날은 “그래도 여기서 이런 칩을 만들 수 있어서 좋다”라는 생각이 들고, 어떤 날은 “오늘은 그냥 잠이나 자고 싶다”라는 생각이 번갈아옵니다.
조직 문화로 보면, 예전에 비해 공식적인 워라밸·복지 제도는 분명 좋아진 편이고, 회로설계처럼 코어 직무는 회사에서도 중요하게 보는 포지션이다 보니 보상이나 커리어 관점에서는 얻어가는 게 많습니다. 반면, 반도체 업종 자체가 경기 사이클과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안정적인 9 to 6를 기대하기에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곳인 것도 사실입니다.
정리해서, 질문자분 입장에서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공대 시험기간보다는 일상적인 삶이 있고, 그 대신 시험기간 같은 구간이 프로젝트마다 한 번씩은 꼭 찾아오는 직장이다. 다만 그 시험이 끝나고 나면, 그 결과물이 전 세계에 깔리는 걸 보면서 나름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질문자분이 정말로 워라밸을 최우선으로 두신다면, 같은 회로설계 안에서도 조금 더 일정이 완만한 분야나 다른 회사들도 같이 비교해 보시는 게 좋고, “어느 정도 바빠도 괜찮으니, 기술적으로 성장하고 세계 최상위 레벨의 제품을 만들고 싶다” 쪽에 마음이 더 끌리신다면 메모리 회로설계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선택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더 자세한 회로설계 컨텐츠를 원하신다면 아래 링크 확인해주세요 :)
https://linktr.ee/circuit_mentor